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예고편이나 우리나라보다 일찍 개봉한 해외의 반응을 보면 이 영화는 트리니티 실험보다는 그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사상과 애국심을 검증하려는 청문회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이번에 인간희극 출판사에서 출간된 <One World or None_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대목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멀리서 방사선을 탐지하면 되지 않을까?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상원 청문회에서 워싱턴 지하에 원자 폭탄이 든 상자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확인할 과학적 도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아무렴요, 그런 도구야 당연히 있습죠. 바로 스크루드라이버인데, 조사관이 그걸 이용해서 지극정성을 다하여 폭탄이 발견될 때까지 상자 하나하나를 차례대로 열면 된답니다.”
오펜하이머는 농담한 것이 아니다. 우라늄-235와 플루토늄에서는 소량의 방사선이 방출되지만, 폭탄의 효율성을 높일 목적으로 이용되는 중금속 탬퍼가 이미 약해진 방사선을 아주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원자 폭발물에서 방출되는 중성자는 투과성이 굉장히 뛰어나지만, 폭탄의 구조 자체가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폭발 전까지는 중성자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중성자가 절대 탈출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설계가 된다. 설령 바로 옆방에 폭탄이 목조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도, 이를 감지하기는 어렵다.
원자 폭탄의 가공할 파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청문의원를 향해 시니컬하게 내뱉는 듯하지만 실상은 틀린 말도 아닌 전형적인 과학자의 말투 같아서 이런 말을 할 때 오펜하이머의 표정은 어땠을까 상상하게 된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력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사량이 많다는 해외 관객들의 평이 많은데, 역사물이자 전기물이라는 점에서 미리 전후맥락을 알고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One World or None_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를 강력히 추천한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하여 아인슈타인, 보어 등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직접 쓴 책이라 몰입도가 남다르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수업, <테넷>의 시간 패러독스 수업 등, 놀란 감독의 영화는 늘 "스터디 타임" 같은 장면들이 있는데, 다루는 주제들이 무겁다보니 그런 장면들이 딱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특히 교육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흥행 포인트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펜하이머>에서는 어떤 원자 과학 수업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핵 분열의 과학적 배경부터 그 역사적 정치적 맥락까지 대중의 언어로 풀어낸 <One World or None_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가 영화 관람과 함께 핵무기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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