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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권도

화백 이소룡?

이소룡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다. 1973년에 사망했으니까 벌써 42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강렬한 이미지는 여전히 빛이 바래지길 거부하고 있다. 서양인이 동양을 인식하는 이미지들 중 일본을 넘어서는 유일한 대상은 이소룡 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몇년 전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싸이도 동양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소룡처럼 오랜 시간 강렬하게 유지될지는 미지수...) 


아무튼 사망 3년여 전부터 <당산대형>,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의 걸작 액션영화를 남기며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젊은이는 32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자, 이제 그는 노랑 츄리닝을 입고, 이상한 기합소리를 지르면서 코를 엄지 손가락으로 한번 훑는 영화배우 이소룡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다 인가? 사실 이소룡은 32년이란 짧은 삶을 산 사람이 남긴 것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강렬한 영화배우 이미지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는 도올 김용옥이 "꽤나 깊이있는 철학"이라고 평할 만큼 일생 동안 자기표현의 방법을 사유한 철학자였고,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이종격투기(MMA)의 틀을 잡은 선구자적인 무예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꽤 그럴 듯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기도 했다. 이 포스팅에서는 그의 화가로서의 면모를 간략하게나마 전해보려고 한다.



 

Bruce Lee Foundation




위의 사진은 복장을 보아하니 그의 유작인 <사망유희>의 촬영장이라고 추측된다. 이소룡은 기본적으로 미적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가 주연과 감독을 동시에 맡았던 <맹룡과강> 같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카메라 앵글이나 미장센 등을 보면 그가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제대로 간파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연출자로서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유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에는 스스로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영화 감독들이 프레임 안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한 것처럼 이소룡 역시 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 위 사진처럼 복잡한 촬영장 속에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상해보는 습관이 있었고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업을 무척 즐거워 했다.  


 



 

위의 그림은 이소룡이 남긴 유일한 저서인  <절권도(2015년 6월에 출간된 완역 소장판)>에 수록된 그의 스케치이다. 상당히 공을 들여 그린 이 그림을 보면 그가 꽤 숙련된 드로잉을 구사할 줄 알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소룡은 이 그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무술동작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절권도>에 그가 직접 그린 수많은 스케치들을 남겼고 이 스케치들은 그가 창시한 절권도의 독특하고 효과적인 동작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다음의 예시들도 <절권도>에 수록된 이소룡의 그림들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필체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이소룡은 그림뿐만 아니라 독특하고 아름다운 필체도 가졌었다. 위의 그림들 옆에 쓰여진 메모들도 이소룡이 직접 쓴 것으로, 이런 그의 서체는 디지털화하여 'bruce_lee 폰트'가 제작될 정도로 독특한 개성으로 사랑 받고 있다. 아래는 이소룡의 서명인데 그의 캘리그래퍼(서예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구성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p.s. 앞으로도 이소룡의 다양한 면모를 전하는 포스팅을 올리고자 하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소룡의 삶이 집약되어 있는 완역 소장판 <절권도>도 많이 구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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